[헷갈리는말말]⓵ 노인 대신 ‘어르신’, 어디서 시작된 걸까?

옛말 ‘얼우다’에서 어르신의 흔적을 발견하다

조지연 기자 | 기사입력 2020/09/23 [18:10]

[헷갈리는말말]⓵ 노인 대신 ‘어르신’, 어디서 시작된 걸까?

옛말 ‘얼우다’에서 어르신의 흔적을 발견하다

조지연 기자 | 입력 : 2020/09/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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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언어는 역사성을 띤다. 어떤 말이든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모습과 의미가 변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긍정적이었던 단어 뜻이 강산이 변하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기도 한다. 언어가 변화하는 탓에 우리말은 유독 헷갈리는 표현이 많다. 자칫 대화 도중 단어 선택을 잘못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기억이 있진 않은가. ‘헷갈리는말말’에서는 시니어가 헷갈릴 수 있는 단어를 선정해 그 역사를 파헤치고자 한다. 

 

집밖에 나서서 사람을 만나면 간혹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특정 노인을 가리킬 때 혹은 특정 노인에게 말을 걸 때 ‘어르신’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노인’이라고 부르는 건 괜찮은데, 어르신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나이 많다고 차별하는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시니어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 어르신이라는 단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현대에 사용하는 ‘어르신’의 시초는 ‘얼우신’으로 파악된다. 얼우신이라는 단어는 1510년대 문헌인 《번박 58ㄴ》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문헌에는 ‘얼우신하 허믈 마쇼셔’라고 쓰여 있어 얼으신이라는 단어가 당시에도 사용되던 단어임을 추측할 수 있다.  

 

16세기의 ‘얼우신’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가 결합한 ‘얼우-’에 선어말어미 ‘-시-’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결합한 것이 명사로 굳어진 표현으로 확인된다. 얼우신은 ‘얼우’는 옛말 ‘얼다’에 사동접미사가 붙은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얼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얼다’는 당시 △교집하다 △교합하다 △교미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얼다’에 ‘-우-’가 붙은 동사인 ‘얼우다’ 역시 그와 비슷한 의미로 혼인하다, 결혼하다 등의 의미로 쓰였다. 즉, 얼우신은 혼인을 한 사람을 빗대어 만들어진 단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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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얼우신이라는 단어를 ‘혼인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홍윤표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회 위원장(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은 새국어소식 을 통해 “(현대 국어와는 달리)원래 얼우신의 뜻은 매우 다양했다.”고 설명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리한 ‘어르신’의 의미는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혹은 ‘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홍 위원장은 “과거에는 신분이나 관직이 높은 ‘대인’의 의미로 얼우신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가문 어르신네, 일가 어르신네, 싀어르신네, 밧갓 어르신네, 백부장의 어르신네 등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 일가친척 중의 웃어른도 ‘어르신네’라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다만, 1인칭을 높이지 않는 국어의 특징상 자신의 부친은 절대 어르신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겪어온 역사 변화를 따라오다 보면 문득 의문이 드는 현대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어른’이다. 생각해보면 어른과 어르신,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 어감에서 오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굳이 높고 낮음을 따지자면, 어른은 그냥 ‘평어’ 같다면 어르신은 ‘높임 표현’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현대 국어에서 느껴지는 ‘어른’과 ‘어르신’의 차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홍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에 ‘어르신’은 주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할 때에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어른’은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범칭의 성인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현대어에서 ‘어른’과 ‘어르신’의 뉘앙스 차이는 이미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현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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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나 관직이 높은 어른을 지칭하는 ‘얼우신’이라는 말은 이후 몇 차례의 변화를 맞이한다. 16세기에 ‘ㄹ’ 뒤에 오는 유성후두마찰음 ‘ㅇ’이 완전히 탈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얼우신’ 또한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여 18세기에 지금의 ‘어르신’과 유사한 표기인 ‘어루신’이 됐다. 

 

국립국어원은 어원과 관련해 “18세기까지 ‘얼우신’과 ‘어루신’이 공존하다가 19세기에 제2음절 모음 ‘ㅜ’가 ‘ㅡ’로 바뀌면서 현대 국어와 같은 ‘어르신’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어르신의 역사를 보면, 어르신은 높임 표현으로 사용하던 것이 맞다. 하지만 현대에는 어르신이라는 단어 사용의 뉘앙스로 인해 당사자인 청자가 체감하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지 못하는 고령자를 보고 차에서 경적을 울리며 ‘어르신들은 밖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문맥을 아무리 고려해도 이 경우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결코 좋게 들리지 않는다. 화자가 높임 표현을 가장하여 차별을 위한 단어로 어르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다. 해당 속담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 표현한 단어는 청자와 화자 모두에게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르신이라는 단어의 본뜻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면 화자의 입장에서 평소 자신이 어떤 의미로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했는지 떠올려보자. 어쩌면 당신이 내뱉던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500년 전 그날에는 존경의 의미를 가득 담은 한 마디였을지도 모른다. 

 

[백뉴스(100NEWS)=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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