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문학을 읽다] ⑥ 죽음을 인식한 인간의 삶

죽음을 인식한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보여주는 소설

허민찬 기자 | 기사입력 2020/06/29 [11:03]

[시니어, 문학을 읽다] ⑥ 죽음을 인식한 인간의 삶

죽음을 인식한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보여주는 소설

허민찬 기자 | 입력 : 2020/06/29 [11:03]

[백뉴스(100NEWS)=허민찬 기자] 한 여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는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은 그녀가 약에 취해 자면서부터 시작된다.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의 책 표지  © 제공=문학동네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저승이 아닌 지역의 한 악명높은 정신병원이다. 그녀가 결심한 죽음은 우연히 자살하는 광경을 본 사람에 의해 무산된다. 대신 다량의 수면제 약효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신병원 의사에게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그녀는 의사에게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의사는 어차피 죽을 거라고 거절한다. 복통, 구토 등의 병세가 나타나고, 그녀는 차라리 바로 죽었으면 하고 바란다. 정신병원 탈출을 감행하지만 연이어 실패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여인을 만나 이야기를 한 후, 그녀는 차라리 남은 시한부 인생을 정신병원 안에서 주관적으로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주된 내용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베로니카가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자살을 결심했고, 죽음을 인지한 이후 모종의 이유에서 탈피한다. 주관적인 삶을 선택한 베로니카는 정신병원을 마음대로 누리고, 즐기기까지 한다.

 

베로니카가 자살을 결심한 모종의 이유는 정신병원 주치의에 의해 드러난다. 바로 ‘비트리올 증후군’이다. 복면가왕으로 유명한 가수 하현우가 소속된 밴드 국카스텐의 대표곡이기도 한 ‘비트리올 증후군’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등장하는 병이다. 이는 남이 시키는 대로 살고, 남이 하는 대로 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증상을 보인다. 바로 타인에 의한 삶을 병으로 규정한 것이다. 

 

‘비트리올 증후군’, 즉 타인에 의한 삶의 전형인 과거 베로니카의 삶은 안정된 직장, 일상의 반복, 타인과의 관계로 점철된 삶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 베로니카는 자살을 결심한다. 타인에 의해 결정되었던 삶을 끝내기 위해, 그 삶에서 자신이 바랐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죽음을 결심한 후, 삶은 180도 변화한다. 타인에 의한 삶에서 극단적으로 자신을 위한 삶을 지낸다. 자신을 조롱한 노인의 뺨을 때리고, 정신병원 주치의에게 대항하고, 자꾸 탈출을 감행한다. 과거 베로니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한 대범한 행동을 펼친다.

 

자살 이후 주관적이고 대범한 베로니카의 삶은 얼핏 비도덕적으로 비친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에서 후회는 사치라는 듯, 앞으로 항상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동적인 정신병원 수감자들은 그녀의 행동에 조소하면서도 뒤에서는 선망한다.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조롱의 대상이면서 선망의 대상이 된다.

 

‘비트리올 증후군’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만 등장하는 허구의 병이다. 그러나 그 증상은 일상 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비트리올 증후군’은 허구의 병이라기보다 오히려 타인에 의한 삶을 병으로 규정한 작가의 장치이다. 그러한 병세 속에서 인간은 살아있을 이유를 잃는다. 마치 알베르 까뮈가 ‘시지프 신화’를 통해서 말한 자살하지 않을 이유처럼, 내가 왜 사는지 의문을 가지고, 삶의 목적을 상실한다.

 

알베르 까뮈의 부조리 철학은 삶의 유한성이 바로 부조리라고 말한다. 인간은 죽는다.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자살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알베르 까뮈는 그런 의문을 스스로 던지고, 자살은 그저 도피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자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부조리에 대한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반항이다. 부조리를 인식하고 반항하는 삶만이 올바른 삶이다. 마치 집요함과 통찰력으로 사막에서 살아남듯, 인생은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알베르 까뮈는 말한다.

 

반항하는 삶의 전제는 바로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타인에 의한 삶을 보내는 사람은 죽음을 인식하지 않는다. 평소에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다 죽음을 인식하게 될 때 삶이 뒤바뀐다. 죽음을 인식한 삶과 인식하지 않은 삶은 큰 차이가 있다. 베로니카가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고 주관적으로 사는 것처럼. 죽음을 인식한 인간은 어차피 죽는 삶이 아닌, 최선을 다하다 죽는 삶을 선택한다. 작가는 베로니카를 통해 죽음을 인식한 삶을 보여준다. 

100뉴스(제주)
허민찬 인턴기자
ksh@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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