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아닌 순간을 그리는 작가, 조기섭

“제주를 그리지만, 실제로는 없는 공간을 그린다”

김영호 기자 | 기사입력 2020/01/30 [14:08]

공간이 아닌 순간을 그리는 작가, 조기섭

“제주를 그리지만, 실제로는 없는 공간을 그린다”

김영호 기자 | 입력 : 2020/01/30 [14:08]

▲ 스스로를 제주도에 살고 있고, 제주도에 계속 살고 싶은 사람으로 소개한 조기섭 작가            © 김영호 기자


[백뉴스(100NEWS)=김영호 기자] “안녕하세요. 제주도에서 살고 있고, 제주도에서 계속 살고 싶은 한국화 작가 조기섭입니다.” 

 

조기섭 작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에 대학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를 제주도에서 자랐다. 본인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제주도 사람이 아니었다는 조금은 특이한 출생의 비밀(?)을 지닌 작가다. 

 

“학교에 붙어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약 10년 동안 서울에서 지냈어요. 처음에는 좋았죠. 네온사인도 번쩍번쩍하고, 대학로에 놀 것도 많고. 그런데 한, 두 달 지나니까 싫어지더라고요.”

 

그러던 2007년, 졸업 전시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조기섭 작가는 제주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본인 말로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고민하게 된 시기라고 한다.

 

“다시는 제주도에 돌아가지 않을 줄 알았어요. 말년에나 다시 내려가서 살겠지 했는데 제주도에는 부모님 친척도 안 계시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죠.”

 

그는 제주에 돌아간 뒤로는 쭉 제주에서 활동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나, 제주에 돌아갔을 당시 그의 작업 방식에 변화는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제주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그의 작업 방식을 바꿔버린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옛날에 추자도에 있는 초등학교에 배를 타고 아이들을 가르치러 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음날 떠나려고 했는데 3일 동안이나 풍랑으로 배가 결항이 된 거예요. 하루면 둘레길을 구경 하고 그랬을 텐데 너무 할 게 없어서 그냥, 진짜 앉아있었어요.”

 

그러던 그는 매일, 똑같은 담벼락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노란 담벼락 앞에 제가 각각 다른 시간에 앉아있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많아요. 그리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담벼락에 있는 담쟁이들을 그렸습니다.”

 

▲ 질문을 듣고 있는 조기섭 작가  © 김영호 기자

 

그는 이제 똑같은 곳을 자주 가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시각적으로 사물이 고정된 공간에도, 방문하는 각각 순간의 바람은 다르고, 사물의 떨림과 진동이 다르다. 그는 그 순간을 느끼고,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제주도 자연물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제주 풍경을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 공간에서 순간 느껴지는 것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평론가는 사실에 기반해서 그리지만, 추상화를 그린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공업용 은분을 사용해 순간의 반짝거림을 표현한다는 조기섭 작가, 그는 최근 ‘슬로우 라이브 페인팅’이라는 실시간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ooooo sam-sa-ra’ 였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흐르다’라는, 윤회라는 뜻인데요. 영상에 작가는 등장하지만, 작업물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은분의 색이 화면에 담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처음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과 끝에 작업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같은 구도로 찍어서 그 둘이 ‘흐르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기섭 작가는 자신의 호흡이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그 호흡을 라이브 페인팅 영상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라이브 페인팅 영상에서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작가와, 그걸 구경하는 사람의 소통도 담고 싶었지만, 작가라는 사람이 뭐랄까요. 사람들은 작가라는 사람을 너무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고, 버스를 운전하는 것처럼 저도 작업을 할 뿐인데요. 작가의 작업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장소도 일부러 버스 차고를 선택했습니다.”

 

작품활동을 하며, 전시회를 열며 항상 아쉬움을 느끼고, 그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또 작업을 시작한다는 조기섭 작가. 아쉬움을 자극 삼아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그는 작가를 하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생각에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그냥 매일을 하루같이 작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꾸준함이 다름을 만드는 거죠. 작가로 살면서 ‘대단한 작업물을 꼭 남기고 싶다’라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냥 작업을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거든요.”

 

중학생 시절, 학예회 준비로 한 달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을 해도 즐거워서 기뻐하는 조기섭 작가를 보며, 중학교 선생님은 조 작가의 부모님께 미술을 배울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태도는 약 25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제 꿈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빛을 등진, 아주 큰 벽이 있는 방에 여태 기억했던 풍경들이 다 담겨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해가 떨어지면 그림이 또 제가 보지 못했던 그림이 되기도 하거든요. 제주도에는 일단 그런 공간이 없어서 제가 만들까 생각 중인데, 그림을 그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웃음)”

 

공간이 아닌 순간을 그리는 조기섭 작가, 언젠가 그의 공간을 찾아, 그가 꿈꿔온 그림을 실제 화폭에 옮길 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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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뉴스
김영호 기자
zerofive@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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