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근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곳, ‘덕수궁’을 돌아보다②

광명문과 함녕전, 정관헌, 고종의 길, 중명전, 돈덕전, 석조전

이다솜 기자 | 기사입력 2019/07/08 [10:33]

[현장스케치] 근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곳, ‘덕수궁’을 돌아보다②

광명문과 함녕전, 정관헌, 고종의 길, 중명전, 돈덕전, 석조전

이다솜 기자 | 입력 : 2019/07/08 [10:33]

 

▲ 박용호 시니어가 덕수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채연 기자

 

[백뉴스(100NEWS)=이다솜 기자] 현재 덕수궁은 ‘덕수궁 문화재 해설사’, ‘우리 궁궐지킴이’, ‘우리 궁궐길라잡이(이하 길라잡이)’ 총 세가지의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중 길라잡이로 활동 중인 박용호 시니어를 만나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덕수궁 내전(內戰)과 서양 건축물을 살펴봤다.

 

■ 제 위치를 찾아간 ‘광명문’과 고종의 손길이 묻어 있는 ‘함녕전’

 

▲ 최근 제자리를 찾은 광명문은 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다.     © 박채연 기자

 

작년에 복원된 광명문은 고종의 처소인 함녕전의 대문이다. 이전까지는 일제에 의해 덕수궁 구석으로 옮겨져 문화재 보관 장소로 기능했다. 길라잡이는 “오랜 세월을 돌아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함녕전은 고종이 나랏일을 보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한 곳이다. 외관을 봤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발’이었다. 그는 “빨간색이라 설치 당시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본지 기자의 눈에는 아궁이가 눈에 띄었다. 아궁이에 대해 묻자 “함녕전의 아궁이는 일반 사가에 있는 아궁이와는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아궁이는 부뚜막에 있어서 음식을 조리하는 동시에 온돌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궁궐에 있는 것은 ‘함실 아궁이’로 오로지 난방이 목적이다.”라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 빨간색 발이 설치된 함녕전. 함녕전의 창은 반만 막혀있다.     ©박채연 기자

 

길라잡이는 함녕전을 둘러보다 “유적지에 가보면 창을 창호지로 반만 막은 곳이 많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라고 질문했다. 이어 “이런 것들은 관람객을 위한 배려다. 통풍을 위해서가 아니다. 창호지를 사용해서 이미 바람은 잘 통한다. 단지 창을 다 막으면 관람객이 궁금해하기 때문에, 훼손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심정을 고려한 것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길라잡이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지나쳤을 사실이다.

 

■ 고종이 커피를 마시던 ‘정관헌’

 

▲ 정관헌은 기존의 궁궐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 박채연 기자


내전을 간략하게 둘러보고 함녕전의 뒤편에 있는 정관헌으로 향했다. 정관헌은 한국적인 미와 서양의 양식이 혼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길라잡이는 지붕을 가리키며 “지붕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기와를 사용하지 않았다. 기존의 건물과 어떤 점이 다른 지를 비교하며 본다면 좀 더 흥미로울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이곳은 주로 연회가 열리는 장소였다고 한다.

 

■ 고종이 지나간 ‘고종의 길’과 외딴섬처럼 있는 ‘중명전’

 

▲ 덕수궁 내부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고종의 길을 만날 수 있다.     © 이다솜 기자

 

길라잡이는 정관헌과 이어진 숲길을 따라 이동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길을 따라 걷다 “혹시 ‘고종의 길’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최근 복원된 고종의 길은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이용한 피난길로 덕수궁 내부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이 길은 정동공원까지 이어진다.

 

덕수궁의 부지는 원래 서울시청앞 광장 부근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나 일제의 영향으로 축소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던 각국의 외국 공사관으로 인하여 궁궐의 모습이 조각나 있었으며 그로 인해 현재도 기형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 고종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이다솜 기자


길라잡이는 “해설을 하면서 사람들이 경복궁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덕수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덕수궁을 ‘고종의 궁궐’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많이 만났다.”며 “이 궁궐은 근대화를 거치며 큰 변화를 겪었다. 어떻게 보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공간과 역사를 비집고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고종의 길도 그렇고 위치상 덕수궁 밖에 있는 중명전도 그렇다.”고 말했다.

 

▲ 중명전은 덕수궁 밖에 위치하고 있다.     © 이다솜 기자

 

실제로 중명전은 지어질 당시, 덕수궁과 중명전 사이의 미국 공사관 때문에 덕수궁 담장 밖에 지어졌다. 처음에는 황제의 서재로 이용하려고 했으나 위치 등의 이유로 별궁처럼 사용됐다. 중명전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볼 수 있다.

 

길라잡이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덕수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곳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한다. 공간의 구조도 마찬가지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재건 공사가 한창인 ‘돈덕전’

 

숲길의 끝에는 재건 공사중인 돈덕전을 볼 수 있었다. 길라잡이는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여기가 동물원이 있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과 외국 귀빈들과의 연회를 위해 지어졌으나 일제가 헐어서 없앤 건물이다.

 

■ 고종의 의지가 담긴 ‘석조전’

  

▲ 얼핏 보면 유럽의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석조전의 정면 모습이다.     © 박채연 기자

 

돈덕전 옆에는 석조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수립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는데, 외국 건물과 견주어도 으뜸이 될 만한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운 것이 석조전이다. 1910년에 완공된 석조전 본관은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길라잡이의 말에 따르면, 1층과 2층은 전시실인데 관람 인원에 제한이 있어 사전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옆에 위치한 별관은 1938년에 일제가 완공한 건물로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길라잡이와 함께한 덕수궁 관람은 약 1시간이 걸렸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던 박용호 길라잡이는 “많은 분들이 덕수궁과 다른 유적들을 자주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투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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