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간송’이 일제로부터 지켜낸 대한의 문화재, ‘대한콜랙숀’

간송 전형필의 흔적이 담긴 전시

김다윤 기자 | 기사입력 2019/03/01 [10:58]

[카드뉴스] ‘간송’이 일제로부터 지켜낸 대한의 문화재, ‘대한콜랙숀’

간송 전형필의 흔적이 담긴 전시

김다윤 기자 | 입력 : 2019/03/01 [10:58]

 

 

 

 

 

 

 

 

 

 

 

 

 

[백뉴스(100NEWS)=이예림 김다윤 기자]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대한콜랙숀은 간송의 흔적을 담은 전시다. 수많은 유산과 그 속에 깃든 정신이 대한민국의 미래로 전해지기를 바랬던 간송의 마음, 이를 느낄 수 있었던 전시의 내용을 담아봤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간송 전형필이 남기고 간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를 큰 두 줄기로 나누자면 하나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고미술품을 수집 및 보존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3.1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민족사학이었던 보성을 인수해 육영사업에 매진한 일이다.

 

그는 혼돈의 시대에 민족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수많은 미술품들이 헐값에 팔려 나라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한 주권을 빼앗긴 채 혼란 속에 흔들리는 나라의 미래와 희망이 오직 교육에 있다는 확신으로 일제의 강압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보성학원

 

100년 전인 1919, 그 해의 31일은 우리나라가 세계 만방에 독립국임을 알린 날이다. 3.1 운동이라는 역사적 비폭력 저항 운동의 중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 사학인 보성학원이 있었다. ‘흥학교이부국가(興學校以扶國家)’라는 이념을 앞세워 출발한 보성은 민족정신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보성학원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바로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이 수집하고 보존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유물들

 

25세도 되지 않아 10만 석 재산을 상속한 간송 전형필이 고가의 서화나 골동품을 사들인 것은 그저 한 개인의 고아한 취미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1906년과 그의 수집활동이 주로 이뤄졌던 1930-1940년대의 상황을 그의 방대하고 체계적인 컬렉션과 함께 살펴봤을 때, 그런 단순한 이유로는 그의 수집 활동이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도굴을 당해 일본인에서 또 다른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갈 뻔했던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돈가방 들고 가 단숨에 가져온 이야기, 세계적인 골동품 회사인 야마나카 상회에서 탐내던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경매 경쟁에서 이겨 손에 넣은 이야기, 영국 출신 일본 주재 변호사 존 개스비로부터 큰 돈을 치르고 당대의 수집가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고려청자 컬렉션을 인수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왔다.

 

앞서 설명한 대표적인 유물들 이외에도, 전시관 내부에서는 간송이 수집한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각 유물의 주변에는 해당 유물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다양한 유물들과 그 유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찬찬히 살펴 본다면 간송특별전을 더욱 특별하고 인상적으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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