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순국했던 곳

김다윤 기자 | 기사입력 2019/01/24 [11:30]

[현장스케치]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순국했던 곳

김다윤 기자 | 입력 : 2019/01/24 [11:30]

 

[백뉴스(100NEWS)=김다윤 기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근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했던 서대문형무소를 보존 및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고난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불굴의 의지로 독립과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그 저력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서대무형무소역사관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를 향한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는 현장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전시관 1, 2, 3층을 시작으로 중앙사, 옥사, 공작사, 사형장, 격벽장, 취사장으로 구성돼 있다.

 

 

억압과 공포의 상징 서대문형무소

전시관 1층은 정보검색실, 형무소역사실, 영상실로 이뤄진다. 서대문형무소의 변화 과정과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운용실태, 해방 이후 독재정권의 민주화인사 탄압실태를 살펴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19081021일 경성감옥으로 개소됐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민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민에 대한 억압과 처벌의 장소로 이용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 및 순국했으며, 광복 이후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돼 고난을 치렀던 곳이다.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여 년의 감옥 운영 기간 동안 식민 권력과 독재정권에 항거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일제는 한국의 식민 지배를 위해 한국민을 감금하고 탄압할 시설을 필요로 했다. 1908년 전국의 8개 주요 도시에 본감옥과 산하 8개 도시에 분감옥을 설치해 전국에 16개소의 감옥을 설치했다. 1910년 강제병합 직후 21개소, 1920년 이후엔 평균 30여 개소 내외의 감옥을 설치했다. 이들 감옥은 전국 철도, 도로망을 따라 주요 도시에 설치됐고, 일제는 식민지 한국 전역을 거대한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고 폭압적인 식민 지배를 자행했다.

 

 

민족의 저항 독립운동

전시관 2층은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 실상을 전시하고 있는 민족저항실, 수형기록카드를 전시해 추모하고 있는 민족저항실,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민족저항실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제국 말기, 우리 민족은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전개해 일제의 침략을 저지했고, 1910년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잃은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게 전 민족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0~1945년에 걸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민은 의열투쟁, 해외 독립군 기지 창건, 삼일독립만세운동 등 다양한 방법의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 민족저항실에서는 이 과정 속에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또는 순국했던 독립운동가들과 관련된 주요 사건 및 활동을 볼 수 있다.

 

 

민족저항실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카드가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가의 기록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되새겨 보는 공간이다. 수형기록표는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지원 받았으며 그 원본은 동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1919년 삼일독립만세운동 이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독립운동과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서대문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

전시관 지하는 지하고문실과 그림자 영상 체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 보안과청사 지하실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독립운동가를 취조했던 공간이다. 각 방은 취조실과 임시구금실, 독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 끌려온 독립운동가는 취조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온갖 고문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지하취조실은 수감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지하고문실이라 불렸다.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은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 자행했던 폭력과, 국권을 되찾기 위해 한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증명하고 있다.

 

생존 독립운동가의 육성 증언을 통해 폭압적인 식민지 통치의 실상도 볼 수 있다.

 

그림자 영상 체험은 관람객의 얼굴이 그림자로 투영되어, 직접 독립운동을 체험하는 특수영상이다. 삼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와 고통스러운 고문을 이겨내고 감옥 안에서도 만세운동을 고창했던 독립운동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상영시간은 130초이다.

 

 

중앙사

중앙사는 1923년 제10, 11, 12옥사와 연결해 옥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신축됐던 2층 건물이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공간으로 이용됐고, 간수들은 이곳을 통해 옥사로 출입했다. 2층은 전체 공간을 강당으로 꾸며 수감자들을 전향 교육하는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간수사무실, 형무소 의식주, 옥사로 가는 길, 중앙감시대, 서신실이 전시돼 있다.

 

전국 최대 감옥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한국을 폭력적으로 지배한 최고 통치기관이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시 조선총독부 직속으로 편제돼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지휘, 감독 하에 운영됐다. 형무소의 운영 인력 가운데 중요 직급은 대다수 일본인이 장악했으며, 1930년대 전국 30여 개 감옥 가운데 가장 대규모의 인력이 배치돼 운영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수감된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한국 최초, 최대의 근대감옥으로 개설돼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가장 대표적인 악명 높은 감옥으로 운영됐다.

 

 

19222층으로 지어진 옥사로, 1919년 삼일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자가 급증하자 신축됐던 건물이다. 감시와 통제가 용이하도록 파놉티곤 구조를 도입해 가운데 중앙간수소를 중심으로 각 옥사를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했다.

 

천정에는 수감자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복도를 밝게 하기 위해 채광창이 설치됐다. 서울구치소 운영 당시 훼손됐던 것을 2010년 보수, 정비 시 원형으로 복원했다.

 

12옥사 내부에는 3칸의 독방과 독립운동가들 사이의 암호통신인 타별통보법등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객이 직접 감방 안에 들어가 수감체험을 할 수 있다.

 

 

12옥사에는 형무소 수감 모습, 12옥사 독방 먹방’, 순찰하는 간수, 타벽통보법, 옥사 내 독립만세운동이 전시돼 있다.

 

독방은 1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으로 일제가 애국지사들에게 육체적인 고문과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설치한 독방이다. 일제는 항일독립운동을 탄압하고자 애국지사들을 악랄한 고문과 혹독한 수형생활로 억압했다. 애국지사들을 특수범죄자로 분류해 전기와 변기도 없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러한 독방에 투옥시킨 후 고문과 폭행 등 갖은 악형을 일삼았다.

 

 

취사장

수감자들의 밥을 짓기 위해 1923년 만들어진 취사장이다. 1937년 증축됐으며, 1988년 철거됐던 것을 2010년 복원했다. 이 건물은 밥 짓는 과정에서 발행하는 수증기를 배출하기 위해 지붕 위에 배기구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사무실, 뮤지엄샵, 강의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발굴당시 보일러 자리, 집수정, 연도 등의 유구가 보존돼 있다.

 

여옥사

일제강점기 유관순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수감했던 여구치감이다. 1918년부터 1979년까지 사용하다가 철거됐다. 1990년 발굴을 통해 2009년 원형을 복원하고 2013년 여성독립운동가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격벽장(隔壁場)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에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칸막이 격벽을 만들었다. 각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해 운동 시켰던 일종의 운동시설이다. 1920년대 지어졌다가 해방 이후 철거됐던 것을 2011년 원 위치에서 약 20m 이전해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추모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고 되새기기 위해 조성된 작품이다. 내부에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투영돼 있다. 작품명은 민족의 혼 그릇이고 임승오 작가가 2010년 만들었다.

 

 

사형장과 시구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장소이다. 사형장은 지하 1,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일본식 목조건물로 1923년에 세워졌으며,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격리됐다. 사형 장치는 교수형 집행을 위한 개폐식 마루판과 교수줄, 죄수 가림막 뒤쪽에 위치해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레버 장치로 구성돼 있다. 마루판 아래 지하공간은 시신 수습실로 사형수의 사망 여부를 확인했다.

 

2000년대 초반, 뒤쪽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사람의 형상이 촬영됐다는 등 여러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구문은 일제강점기 사형집행 후 시신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 뚫어높은 통로다. 구타, 고문 등으로 시신에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을 외부에 공개했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시신을 인도할 유족이 없는 경우 등에도 이용됐다. 외부와 연결된 통로의 길이는 약 200m 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에도 사용하다가 1987년 서울구치소로 철거 계획에 따라 입구를 봉쇄했다. 지난 1992년 독립공원조성 시 발굴해 약 40m를 복원했다.

 

 

공작사

1923년에 지어진 공장 건물로 수감자들의 강제노역이 이루어진 현장이다. 각 방은 기계설치 및 작업을 위해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일제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식민지배에 필요한 관용물품을 조달했다. 이곳에서는 방적기가 설치돼 주로 옷감과 의복이 생산됐으며, 2차 세계대전 말기엔 군수용품이 생산됐다.

 

일제가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각종 물품과 군수용품을 생산했던 기록 영상을 상여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형무소에서 이루어진 노역의 종류와 기록 및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수감자의 노역 시간은 일조량에 따라 계절별로 달랐고, 정해진 시간표에 의해 노동을 했으나 대부분 규정을 초과해 취침 전까지 작업이 계속됐다. 이에 수감자는 하루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1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렸다. 또한 옥사에서 공장으로 이동할 땐 옷을 모두 벗거나 나무 막대기를 뛰어 넘어 몸에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했다.

 

 

일제강점 36년 동안 한국민은 전 민족의 역량을 모아 치열하게 일제에 맞서 싸워 1945815일 광복을 맞이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나 국내외 유사 박물관들과 함께 과거의 반성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을 느끼고 배우고 싶다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람정보]

시간: 여름철(3~10) 9:30~18:00, 겨울철(11~2) 9:3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에는 그 다음날), 11, 설날, 추석날

관람료: 어른 3,000, 청소년 및 군인 1,500, 어린이 1,000, 영유아 무료

경로우대자 및 국가보훈대상자 무료, 장애인 무료

해설: 매주 일요일 13:00, 13: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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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4 | 지도 크게 보기 ©  NAVER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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