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포스트코로나 시대, ‘100세 할머니들’에게서 ‘희망’을 본 젊은이들

보그 9월호 ‘꽃처럼 곱디고운 우리 할머니를 소개합니다’가 젊은 세대에게 힐링으로 다가온 이유

조지연 기자 | 기사입력 2020/09/07 [17:13]

[기자수첩] 포스트코로나 시대, ‘100세 할머니들’에게서 ‘희망’을 본 젊은이들

보그 9월호 ‘꽃처럼 곱디고운 우리 할머니를 소개합니다’가 젊은 세대에게 힐링으로 다가온 이유

조지연 기자 | 입력 : 2020/09/07 [17:13]

▲청포도 알을 들고 있는 할머니의 웃음에는 개구쟁이 같은 순수함이 엿보인다.  ©출처:보그(vogue)

 

여성 패션 잡지 ‘보그’의 9월호가 SNS상에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보그에 올라온 사진을 본 젊은 세대들은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번 보그 9월호의 사진을 보다 보면 위로가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는 반응과 함께 “어쩐지 코끝이 찡하다, 뭉클하다.”, “곱다,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여성 패선 전문지로 유명한 보그가 이번 호에 실은 사진이 무엇이기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보그는 지난달 26일 9월호의 주제인 ‘희망’(HOPE)을 테마로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전문 모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닌 ‘100세 전후의 할머니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보그가 희망을 주제로 100세 전후 시니어들을 섭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그는 앞서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보그는 문득 비주얼 크리에이터 서영희가 보낸 ‘꽃을 품에 안고 향을 맡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희망의 이미지를 발견했다. 다만,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단순히 ‘할머니’ 모델이 아닌 ‘시골에 사시는 100세 전후의 할머니’를 찍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보그가 밝힌 할머니들의 나이는 적게는 93세에서 많게는 106세까지 100살 언저리거나 웃도는 정도다. 이와 관련해 보그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할머니 집에는 본인의 예쁜 사진이 별로 없다. 자식 결혼식이나 환갑잔치의 단체 사진 혹은 영정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 전부”라면서 “할머니의 시골집에서 고운 한복을 입혀 모양도 내고 꽃과 함께 촬영해 잡지에 싣고 액자로 만들어 기념 선물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종이접기가 취미인 어르신이 커다란 종이로 만든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출처:보그(vogue)

 

할머니들의 섭외를 위해 보그는 장수촌 탐방을 시작했다. 그들은 “(그러다가)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전남대학교 박상철 연구석좌교수를 보고 연락을 취했다. 노화 연구 학자이기도 한 그가 순창군 건강장수사업소와 연결해준 덕분에 순창, 구례, 곡성, 담양의 100세 전후 할머니 여덟 분이 섭외됐다.”고 전했다. 장마가 겹치면서 7월 첫째 주부터 시작된 ‘희망 여정’은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었다.

 

보그가 지난 26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9월호에는 ‘희망’을 주제로 그들이 고민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그들이 찾은 ‘희망’의 이미지는 사진 속 여덟 명의 할머니들과의 만남으로 상쇄된 듯 보였다. 보그는 “할머니는 가끔 ‘우리 같은 늙은이를 왜 찍을라구 그랴.’고 물으셨다.”면서 “우리는 ‘할머니 얼굴이 제일 예쁘니까요. 젊은것들이 할머니 얼굴을 보면요, 마음이 좋아져요.’라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홈페이지를 통해 먼저 접한 9월호에는 여덟 할머니들의 사진과 함께 이름과 나이, 사연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외지인인 보그 관계자들에게 할머니들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다만, 보그는 할머니와의 인터뷰에 ‘기준’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들이 정한 기준은 할머니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고단한 인생사나 슬픈 기억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할머니께 좋은 추억을 물어보고,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 혹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등 그들의 현재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보그는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고맙다’였다.”면서 “저희가 감사드린다고 해도, 할머니께서는 손님들의 방문 자체가 즐거우셨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보그가 담긴 시골집의 정경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면서도 가장 정감 있는 사진이다.  ©출처:보그(vogue)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할머니와 할머니가 사는 시골집이 정갈하게 담겨있다. 시골집 마루와  채소, 오래된 의자, 흙과 나무로 지어진 집은 아름다운 배경이 됐다. 이웃집 강아지와 길냥이는 출연료도 받지 않은 채 조연으로 우정 출연함으로써 할머니들과의 돈독한 사이를 과시했다. 

 

할머니들은 한복을 곱게 입고, 화장을 하고, 한 손에는 꽃과 과일을 들었다. 웃음기 가득한 표정부터 포도알을 들고 짓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까지 화보를 찍는 어르신들의 모습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장장 반 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로 ‘코로나블루’를 겪는 젊은 세대들에게 보그가 전한 ‘100세 할머니들의 모습’은 ‘희망’ 그 자체로 다가왔다. 

 

곱게 단장한 할머니들의 웃는 사진은 기존의 노인이 가지고 있는 ‘죽음’, ‘정적인’, ‘아픔’ 등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박하지만 단란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였다.

 

어떤 할머니는 정성스레 키운 채소와 블루베리 등의 과일을 이웃에게 나눠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또 다른 할머니는 종이접기가 취미라 집안이 온통 종이접기 작품들로 가득했다. 그들 각자의 사연은 슬프고 고단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디딤대 정도였다.  

 

▲커다란 잎을 우산처럼 쓰고 있는 할머니가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할머니의 앞에는 할머니가 키우신 듯한 대파가 큼지막하게 자라 있다. ©출처:보그(vogue)

 

카메라가 피사체인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따뜻하고 즐겁다.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단함을 부각하기보다는 그들의 일상에 담긴 △소탈함 △행복 △정감 등을 앵글 안에 담아냈다. 사진 속 등장하는 피사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잠깐 정감 있는 시골집에 놀러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한국적인 소재를 사진 안에 담은 것도 젊은 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고유한 것이 오히려 모든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순간이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들의 모습과 꾸미지 않아 세월이 느껴지는 시골 마루의 모습, 황토벽과 호박 넝쿨, 일명 ‘시고르자브종’(시골 믹스견)이라고 불리는 개와 마당냥(키우지는 않지만 앞마당을 누비는 길고양이) 등이 뉴트로한 감성을 자아냈다. 

 

젊은 세대들에게 왠지 모를 ‘힐링’으로 다가왔던 보그의 9월호는 보그 홈페이지 및 보그 9월호 잡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보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할머니들이 찍은)사진과 여타 가족사진은 액자로 만들어 보내드릴 것”이라면서 “할머니의 자그마한 방에 걸어두시고, 당신이 얼마나 예쁘신지 뿌듯해하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보그 9월호를 접한 후 당신의 마음 속 노인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다른 건 몰라도 보그가 100세 할머니들에게서 발견한 ‘희망’이 온라인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백뉴스(100NEWS)=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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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연 기자
jodelay@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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