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화산책] “차근차근, 천천히”…시간이 빚어낸 달콤한 인생, 영화 ‘인생 후르츠’

노부부의 평화로운 슬로 라이프 너머의 삶과 사람, 그리고 자연

이동화 기자 | 기사입력 2020/07/31 [15:38]

[시니어문화산책] “차근차근, 천천히”…시간이 빚어낸 달콤한 인생, 영화 ‘인생 후르츠’

노부부의 평화로운 슬로 라이프 너머의 삶과 사람, 그리고 자연

이동화 기자 | 입력 : 2020/07/31 [15:38]

▲ 영화 ‘인생 후르츠’의 스틸컷.  © 제공=㈜엣나인필름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만능 살림꾼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는 결혼한 지 65년 된 부부이다. 혼자 산 날보다 함께 산 날이 더 많은 이들은 300평 땅에 15평 남짓의 조그마한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50년 동안 살아왔다.

 

영화 ‘인생 후르츠’는 이들의 느린 일상을 천천히 따라간다. 좋은 거름이 될 낙엽을 모으고, 잡초도 제거하며 과일 50종과 채소 70종을 키우는 드넓은 정원을 가꾸고, 정원에서 나는 과일과 채소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때로는 식탁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 영화 ‘인생 후르츠’의 스틸컷.  © 제공=㈜엣나인필름


겉으로 보기에는 느릿한 일상이지만, 슈이치와 히데코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무엇이든 ‘스스로,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슈이치는 오랜 시간 동안 직접 지은 집의 관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계절마다 창호지를 일일이 바꿔 붙이고, ‘작약-미인이려나’, ‘여름밀감–마멀레이드가 될 거야’ 등의 문구가 적힌 정원의 노란 팻말도 직접 만들어 꽂는다.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편지로 소통하는 지인들에게 귀여운 그림과 글을 담은 엽서를 보내는 일도 그의 일과 중 하나이다.

 

▲ 영화 ‘인생 후르츠’의 스틸컷.  © 제공=㈜엣나인필름

 

히데코는 정원에서 나는 과일과 채소들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은 물론, 이웃과도 함께 나눈다. 단 한 번도 편의점에서 무언가 사본 적이 없다는 히데코는 “물건은 사람을 믿고 사는 것”이라며, 직접 기를 수 없는 식재료들을 단골가게에서만 구입한다. 

 

▲ 영화 ‘인생 후르츠’의 스틸컷.  © 제공=㈜엣나인필름


히데코는 200년 전통의 양조장 집 딸로 태어나 현모양처 교육을 받고, 남편인 슈이치를 따르며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죠”라고 말하며, 남편이 하려는 일은 늘 찬성이었다. 슈이치는 히데코가 하고자 하는 일에 “다 좋은 일이니 하도록 하세요”라며 든든히 믿어주었다. 덕분에 원하는 것을 정확히 요구해본 적이 없는 히데코는 당당해질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서로를 향한 든든한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였다.

 

영화는 이들의 삶과 관계를 조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도쿄대학 제1공학부를 졸업한 슈이치는 일본주택공단에서 일하며 1960년대 ‘고조지(高藏寺) 뉴타운’ 사업에 참여했다. 슈이치는 숲과 산을 남겨두어 바람이 지나가는 마을을 꿈꿨지만, 당시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던 분위기와 예산 등의 문제로 무산됐다. 이후 산을 깎고, 계곡을 없애며 들어선 고조지 뉴타운은 성냥갑을 세워놓은 듯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

 

▲ 영화 ‘인생 후르츠’의 스틸컷.  © 제공=㈜엣나인필름


슈이치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슈이치는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떠드는 대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행동으로 실천했다. 슈이치는 고조지를 떠나지 않고 허허벌판의 너른 땅을 사서 작은 집을 지었다. 남은 공간에는 나무를 가득 심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집에 작은 숲을 가꾸고 산다면, 모두가 커다란 숲속에서 사는 기분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둥산이었던 고조지의 산에 도토리나무를 심는 운동도 제안했다. 시민들이 다 함께 나무를 심은 산은 이제 가을이면 예쁜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슈이치는 대만 타이베이시 근처 도시의 뉴타운 조성 사업에도 참여했다. 어디에 살든 좋은 전망을 누릴 수 있도록 아파트마다 단차를 두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지만, 그곳도 그의 의견대로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작은 묘목을 심었던 그의 집 정원은 울창한 숲을 이뤘고,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의 꿈은 차근차근, 천천히 영글었다.

 

▲ 영화 ‘인생 후르츠’의 스틸컷.  © 제공=㈜엣나인필름


히데코는 “손녀 세대에게 좋은 땅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하며, 굽은 등과 야윈 몸으로도 매일 땅을 일군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마을이 아닌, 맛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릴 수 있는 탐스러운 대지를 가꾸기 위해서 말이다. 히데코와 슈이치는 차근차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키키 키린이 말한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오래 걸린다고, 그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 없는 일이 아니다. 히데코의 말처럼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여러 일이 점점 보일” 것이다. 노부부의 평화로운 슬로 라이프, 그 너머에는 삶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있다.

 

▲ 영화 ‘인생 후르츠’의 포스터.  © 제공=㈜엣나인필름


[백뉴스(100NEWS)=이동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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