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문학을 읽다] ① 이상향의 실체

문학으로 본 이상향의 이면

허민찬 기자 | 기사입력 2020/05/18 [10:18]

[시니어, 문학을 읽다] ① 이상향의 실체

문학으로 본 이상향의 이면

허민찬 기자 | 입력 : 2020/05/18 [10:18]

 

 

[백뉴스(100NEWS)=허민찬 기자] 이상향(理想鄕)은 인간이 상상해 낸 이상적이고 완전한 세계이다. 이상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보거나 꿈꿔왔을 것이다. 

 

이런 상상과 바람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람들이 있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통해 율도국이란 이상향을, 중국에서는 무릉도원을, 기독교에서는 에덴을 제시한 바 있다. 그중 문학으로 제시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상향을 이야기해보자.

 

■ 유토피아, 없는 장소

 

유토피아(Utopia)는 토머스 모어가 제시한 이상향이다. 그리스어 οὐ(not) + τόπος(place)에서 유래한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를 뜻한다. 

 

유토피아의 특징은 계급제가 없고 모두 공평한 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정해진 6시간의 노동 시간 후 각자의 여가를 즐긴다. 엄청나게 부유한 유토피아는 금과 은, 보석 등의 사치품을 하찮게 여기도록 교육한다. 이런 특징 덕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시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공평한 노동과 계급, 사치품에 욕심이 없고, 소위 말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이 보장된 사회인 유토피아는 당시 이상향으로 여겨지며 유토피아가 이상향을 의미하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노예와 침략 전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절처럼 일하지 않는 자에겐 어린애라도 차별을 일삼는다. 이런 사회는 아마 다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표면상 이런 사회를 지향하는 국가가 있다. 그 국가의 말로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유토피아가 마냥 이상향은 아닌 것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 멋진 신세계, 이상향을 가장한 디스토피아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상향을 경고하였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미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상향이다. 

 

멋진 신세계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계급은 말 그대로 선천적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태아 시절부터 계급에 따라 지능이나 능력 따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계급에 지능과 능력을 맞추기 때문에 계급 상승을 원하지 않으며, 하위 계급에게 착취나 학대가 없다. ‘소마’라는 마약을 통해 쾌락과 욕구 실현이 보장된다. 모든 오락 수단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얼핏 상상 그대로의 이상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쾌락과 욕구 실현이 보장되고 지식을 축적할 이유가 없으며, 오락거리만을 즐겨도 되는 사회. 주변에 멋진 신세계를 읽고 ‘이런 사회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만큼 멋진 신세계가 위험한 이유는 정말 이상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는 엄격한 계급 사회이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진다. 멋진 신세계가 이상향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상위 계급의 이야기를 보기 때문이다. 하위 계급은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태아 때부터 지적장애를 갖도록 조작되고, 불만을 말할 수 없는 계급으로 키워진다. 

 

올더스 헉슬리는 진실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책 따위는 아무도 읽지 않는, 오직 쾌락만을 탐하는 사회를 두려워했다. 멋진 신세계는 그런 점에서 이상향을 가장한 디스토피아-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단화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도서 시장이 점점 몰락하고, 과학 문명이 점점 발달하여 과학자들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경고는 점점 실현되는 구체적인 미래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 현실에 지친 이들의 꿈

 

만약 지금 현실이 행복하거나, 꽤 만족스럽다면 굳이 이상향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 이상향은 현실에 지친 이들이 바라는 장소이다. 그러한 장소는 얼핏 들으면 혹할 법하다. 그러나 그 이상향의 이면에는 노예제나 침략 전쟁, 계급 사회와 유전자 조작 등의 암울한 현실이 존재한다. 완전하고 이상적인 사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현실을 행복하고, 꽤 만족스러운 장소로 만들 수는 있다. 그 방법론은 다양하고 상이하지만 결국 실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상향을 꿈꾸기보다는 현실을 이상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인간은 시도했다. 그런 시도가 오해를 받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인해 엉뚱한 현실이 되기도 하였지만, 인간은 늘 그랬듯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노력을 계속한다.

 

이상향은 바라는 세계이다. 무언가를 바라고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이 있다면, 무언가를 바꾸고 개혁하는 능동적 삶이 있다. 이상향을 기다릴 것인가, 이상향을 만들 것인가는 곧 수동적인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능동적인 삶을 살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현실의 부조리를 개혁하고자 하는 삶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어떠한 삶이 더 값진 삶인지보다, 어떠한 삶이 지금의 세상을 이룩했는지 생각해본다.

100뉴스(제주)
허민찬 인턴기자
ksh@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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