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풍경 PICK]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 4대 고궁’ 둘러보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이동화 기자 | 기사입력 2019/12/24 [11:55]

[힐링 풍경 PICK]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 4대 고궁’ 둘러보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이동화 기자 | 입력 : 2019/12/24 [11:55]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온갖 꽃이 만발하는 봄부터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 울긋불긋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사계절에 맞추어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운 땅이다. ‘힐링 풍경 PICK’에서는 네이버TV ‘풍경’ 채널의 생생한 영상을 곁들여 국내여행의 매력을 소개하려 한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의 모습     © 제공=네이버TV ‘풍경’ 채널


[백뉴스(100NEWS)=이동화 기자]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이어진 조선왕조는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유적, 문화재들을 남겼다. 옛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들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우리를 가슴 아프게도, 설레게도 만든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조선의 5대 궁궐 중 ‘4대 고궁’으로 불리는 4곳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경복궁

 

 

첫 번째는 바로 내·외국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조선의 법궁(法宮),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지은 궁궐이다. 1395년에 완성된 궁궐의 이름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큰 복을 누리라’는 뜻에서 ‘경복(景福)’이라 했다.

 

1553년 강녕전에서 난 화재로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이듬해에 교태전·연생전·사정전 등을 복구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복궁은 전소되었으며, 약 270년 후인 1867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재건했다. 이후 일제의 손에 건물 대부분이 훼손되었으며, 1990년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를 시작으로, 2025년 완료를 목표로 하는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 창덕궁

 

 

창덕궁은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의 궁궐이다. 1398년 경복궁에서는 이방원에 의해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으며, 이방원은 형 이방과를 왕으로 추대했다.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던 정종은 2년 만에 이방원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3대 왕으로 즉위한 태종은 다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태종은 형제의 난이 발생했던 경복궁 동쪽에 이궁(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한 궁궐) 건축을 계획했으며, 1405년 새로운 궁궐인 창덕궁이 완공됐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재건까지 270여 년의 공백이 있는 것에 비해 창덕궁은 520여 년간 궁궐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으로, 조선왕조의 숨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은 조선의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중에서도 아름다운 궁궐로 손꼽히며, 자연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궁궐의 모습은 장관이라 할 수 있다.

 

■ 창경궁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위해 지은 곳으로,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1483년 성종이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확장해 창덕궁 가까이에 지은 별궁이 창경궁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창건 당시의 전각들은 모두 소실되었으며,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된 후에도 몇 차례 화재로 인해 내전이 소실됐다.

 

끊임없이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던 창경궁이 가장 크게 훼손된 것은 1907년 순종 즉위 이후이다. 일제는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이름 또한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광복 이후에도 관광지로 이용되던 창경궁은 1983년부터 3년간의 복원 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 덕수궁

 

 

조선 5대 궁궐 중, 가장 규모가 작은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으로,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의 궁호를 따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불리게 됐다.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으나, 임진왜란 당시 피난 갔던 선조가 돌아와서 이곳을 행궁으로 삼아 머물렀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이라 불리게 됐다.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환궁한 이후 200여 년간 비어 있다가 1895년 을미사변과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다시 궁궐로 쓰이게 됐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은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이 황제에 즉위한 1897년부터 여러 전각들이 들어서며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역할했다. 구한말 조선의 멸망을 지켜본 덕수궁에는 전통목조건물들과 서양식 건물과 근대식 석조 건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고유 궁궐 양식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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