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노인영화제 단편경쟁 출품작 ‘더 쎅써’, 라영수 감독을 만나다

“늙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동화 기자 | 기사입력 2019/10/01 [14:47]

2019 서울노인영화제 단편경쟁 출품작 ‘더 쎅써’, 라영수 감독을 만나다

“늙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동화 기자 | 입력 : 2019/10/01 [14:47]

▲ ‘더 쎅써’의 라영수 감독이 취재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동화 기자


[백뉴스(100NEWS)=이동화 기자]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 ‘2019 서울노인영화제(집행위원장 희유)’의 단편경쟁 국내부문 출품작 ‘더 쎅써’의 라영수(80) 감독을 만났다. 라영수 감독은 20여 년 전 IT 기술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으며, 노인ICT평생학습원 ‘은빛둥지’에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동영상 교육 봉사를 해오고 있다.

 

■ ‘더 쎅써’, 인생 제2막과 노인이 해야 할 일

 

‘더 쎅써’는 산란용 병아리의 성별을 감별하는 ‘병아리감별사’를 뜻합니다. 주인공인 조덕재(83), 영문 이름 듀크 조(Duke Joe)가 병아리감별사로 시작한 약 50년간의 이민생활을 성공적으로 마감하고, 귀국해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가하는 내용이 그려집니다. 그의 이민생활기와, 노년의 꿈을 담았죠.”

 

‘더 쎅써’는 올해 서울노인영화제의 단편경쟁 국내부문에 출품한 작품으로 노년의 미래와 현재의 삶에 주목하는 ‘섹션 2: 미래의 우리들’로 본선에 진출했다.

 

영화는 듀크 조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연산초등학교 동창회에 참가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고향인 충청남도 연산을 둘러보며 과거를 돌아보고, 친구들과 회포를 나누며 현재를 즐긴다. 중간중간 그의 이민기를 보여주며, 앞으로 새로운 미래의 목표를 갖게 된 과정을 그린다.

 

“듀크 조는 ‘미국 이민’이라는 꿈을 이뤘습니다. 자손들도 교수·사업가·목사 등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됐죠. 젊은 시절의 목표를 이뤘고, 본인이 할 일을 다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미국의 한인 시니어들은 60세가 넘으면 사회적으로 고립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 있는 한인 시니어들을 위한 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듀크 조는 언어장벽 등 다양한 이유로 소외됐었던 한인 시니어들과 모여서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을 공부하며 한인 시니어들은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됐고, 주변의 동료들과 소통하게 됐다.

 

듀크 조는 더욱 다양한 활동을 위해 은빛둥지에서 영상 제작과 관련된 교육을 받게 됐고, 라영수 감독을 처음 만났다. 그는 사진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했던 경험을 중심으로 다른 노인들에게 모티브를 주는 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듀크 조의 새로운 꿈은 ‘더 쎅써’에도 담겼다.

 

▲ 라영수 감독이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동화 기자

 

“듀크 조는 ‘내 뚝심이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죽기 전에 이것까지는 하겠다’ 이런 마음을 먹습니다. 영상에는 담지 못했지만, 현재는 미국에도 은빛둥지와 같은 노인 교육 체계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기 위해 활동 중입니다. 노인운동에 IT기술을 융합해 노인운동을 다양화시키는 미국 단체인 OATS에 파견되어 한국 측과 교류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노인들의 보금자리, ‘은빛둥지’

 

‘더 쎅써’의 주인공 듀크 조가 영상 제작 교육을 받았던 은빛둥지는 20여 년 전 설립된 노인교육단체다. 비영리민간단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시니어 대상 컴퓨터 기초교육부터 영상제작 교육까지 진행하는 노인ICT평생학습원으로 자리 잡았다.

 

“은빛둥지는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단체이므로 강사들은 모두 봉사활동의 개념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오셔서 타자 치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웁니다. 영상편집까지 배우고, 강사로 활동하기 위한 자격증 시험까지 칠 수 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강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받은 교육들을 다른 수강생들에게 나누는 봉사를 할 수 있죠.”

 

교육의 수혜자였던 시니어들이 시혜자로도 활동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수강생들과 같은 입장이었던 시니어들이 강의를 하므로 보다 쉽게, 보다 천천히, 역지사지로 생각하며 수강생들을 위한 강의가 진행된다.

 

“은빛둥지에는 6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니어들이 모이는데, 70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늙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신(新) 노인’이라고 말하는데요,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사회의 노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영수 감독은 20년 전, IMF 시기에 일자리를 잃고 IT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60세였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IT가 주도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에서 약 3년간 공부를 했다. IT기술을 공부했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우리나라 상고사 회복에 관심이 많았는데, ‘영상’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쉽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활용하면 어려운 역사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배우게 됐죠. 저에게 ‘늙어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될 일’은 후손들에게 역사를 전하는 일입니다. 이대로 어른들이 사라지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노인들이 시간이 있으니 양질의 역사 콘텐츠를 만들어 두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라영수 감독은 교육봉사와 함께 영상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영상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특히, 과거에는 카메라 등의 장비가 무겁고 부피도 커서 촬영 단계에서 많은 체력이 필요했지만, 요즘은 미니 사이즈의 가벼운 장비들 덕분에 보다 수월해졌다고 한다.

 

“작은 캠코더와 플라스틱으로 된 장비들을 사용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나이가 들며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이렇게 대체를 했습니다. 영상을 편집하는 프로그램도 예전에는 접하기 어렵고, 사용하는 법도 매우 어려운 소프트웨어 중 하나였는데, 요즘은 많이 편해졌죠.”

 

라영수 감독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능력이 거의 없는 노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노인들이 평생학습을 하고, 평생학습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하고 생활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영상’은 그 도구일 뿐이다.

 

▲ 라영수 감독이 ‘2019 서울노인영화제’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동화 기자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잖아요. 한국적인 것이 통하는 시대입니다. 저는 우리의 원류를 찾으면 무한한 콘텐츠가 개인마다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콘텐츠를 활용해 노인들을 위한 일을 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AR(증강현실)을 활용해서 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작업은 끝난 상태이므로 빠른 시일 내로 상용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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