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가 손현정, “어르신의 그림 그리기 취미, 자존감 쑥쑥 올라가죠”

그림 그리기, 잊고 지냈던 예술적 감각 깨울 수 있어…우리 삶 더 풍요롭게 해

김이슬 기자 | 기사입력 2022/04/05 [10:37]
행복한 사람들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행복한 사람들
시각예술가 손현정, “어르신의 그림 그리기 취미, 자존감 쑥쑥 올라가죠”
그림 그리기, 잊고 지냈던 예술적 감각 깨울 수 있어…우리 삶 더 풍요롭게 해
기사입력: 2022/04/05 [10:37]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시각예술가 손현정은 "어르신들의 그림 그리기 취미가 장점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 사진=시각예술가 손현정

 

어린 시절 우린 누구나 화가였다. 새하얀 스케치북에 알록달록 크레파스로 사과 같은 내 얼굴을 그렸다가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도 척척 그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머리가 크고, 손이 커지자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됐다. 그림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을 제외하곤 범인(凡人)들에게 그림 그리기란 의식주와 동떨어져 있기에 사치이고 낭비인 건가. 인생의 노을이 지는 노년, 치열하게 먹고 살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고이 접어뒀던 동심을 꺼내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우리 인생을 통통하게 살찌워 줄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이 그림 그리시면 좋은 점들이 참 많아요. 시간을 보내기에 좋고,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니 적당히 운동도 되고, 완성된 그림을 작품처럼 액자에 넣고 전시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어렵다고 스트레스도 받곤 하시는데 결과물이 눈앞에 나오니까 자존감도 쑥쑥 올라가죠. 어르신들의 그런 모습을 보자면 제가 다 뿌듯합니다.”

 

시각예술가이자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 미술 강사로 활동 중인 손현정 작가와 지난달 24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니어 취미 미술에 관해 이같이 말했다. 팔방미인 손현정 작가는 전시, 개인 작품 활동, 강의 등 다채로운 곳에서 제 역량을 발휘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온라인 강의가 늘어나면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강의를 서울 구로 돌봄 어르신 통합센터에서 진행한 바 있다.  

 

손 작가의 강의는 미술에 한정돼 있기보다 확장된 개념인 예술 강의에 가깝다. 입문 예술 강의로써 실질적인 그림 그리기 기술을 알려주고 익히기보다는 ‘힐링(Healing)’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는 “원래도 예술을 통해 감정표현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주였는데,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그 성격이 커진 것 같다”면서 “처음에는 선 긋기부터 시작해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물체, 식물, 풍경 등을 그리도록 지도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 시각예술가 손현정의 드로잉 수업에서 그림그리기 중인 어르신들의 모습.  © 사진=시각예술가 손현정


시니어 수업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띄게 강의 자료를 무조건 글자를 크게 제작해야 한다. 또한, 용어 자체도 영어가 많아 한글로 바꾸고 예시 그림도 일상적인 정물 등으로 바꿔야 한다. 수업을 진행할 때는 천천히 또박또박 진행해야 한다. 그는 “어르신들과 수업하다 ‘아차!’ 실수했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점을 점차 보완하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건 수업의 밸런스를 찾는 거예요. 한 수업안에서 연령대가 비슷하더라도 문화예술 격차가 심해요. 특히나 어르신들 세대에서는요. 어떤 분은 미대를 나오신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이제 막 한글을 배우신 분도 계세요. 그래서 최대한 중간을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그림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요. 자기 작품을 하는 거니까요. 그렇기에 배경을 제쳐두고 각자 작품에 몰입할 수 있어요.”

 

손현정 작가는 시니어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이따금 반성이 뒤따른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르신들을 가르치면서 배울 때가 많다”면서 “어르신들은 욕심이 크게 없어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에 임하곤 하는데, 예술 대하는 그런 태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 시각예술가 손현정의 드로잉 수업에서 그림그리기 중인 어르신들의 모습  © 사진=시각예술가 손현정

 

시니어 수업을 여러 해 진행한 그에겐 그동안 스친 인연 중 인상 깊은 어르신 제자도 있다. 그는 “처음 복지관을 찾아왔을 땐 동그라미도 안 그려봤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혼자서 작품을 척척 그려내고 집을 전시장처럼 꾸며 놓았다”면서 “우울증 치료를 위해 시작한 그림이 그분의 생활이 된 걸 보고, 예술이 꼭 어렵게 배워서 ‘아카데믹’한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해서 즐기는 게 진정 예술임을 깨달았다”라고 이야기했다. 

 

“예술의 좋은 점은 감각을 깨울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동안 그저 흘려보내고 지나쳤던 순간에 ‘아!’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요. 없던 것을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잊고 지냈던 걸 상기시켜주죠. 예술을 크게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보낸 하루에 의미를 되찾아주는 것. 혹시나 취향에 맞는다면, 많은 분이 그림을 그리시면 좋겠어요.” 

 

어르신들은 어디서 그림을 배울 수 있을까. 보통 지역 복지관이나 사회복지센터에서 그림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는 “다른 연령대와 어울려 하는 수업은 언어나 속도가 맞지 않아 서로 불편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차별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알기에 배려가 꽤 필요해서다. 그럼에도 충분한 배의만 있다면 함께 어우러져 수업해도 좋다”고 거듭 강조했다. 

 

손현정 작가는 현재 DMZ 최북단 마을인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에서 진행하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_13 리리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김형관, 박소정, 박환희, 이충열 등 13명의 작가가 백학면 13개의 리를 그리는 작업이다. 그는 4월까지 프로젝트를 끝내고, 오는 5월 4일부터 7월 3일까지 경기 연천군 DMZ백학문화활용소에서 그림을 전시할 예정이다. 가슴 속 깊이 숨겨뒀던 동심을 꺼내 보고 싶다면, 한 번 방문해봐도 좋겠다. 

 

[프로필]

이름: 손현정

직업: 시각예술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문화예술 기획자

학력: 홍익대 일반대학원 메타디자인학부 일러스트과 석사

전시: 손현정 개인전 ‘Shadow play’(2012), ‘그린솜씨’(2017), ‘다시,봄(2018)’, 모두의 전시회 ‘작가의 방_손현정’(2018)

독립출판물: ‘그림솜씨 드로잉의 맛’, ‘단어집 1.집’, ‘그린솜씨 계절드로잉’, ‘나의 계절은 언제나 봄이었다’, ‘스토리집 연희’, ‘스토리집 경주’, ‘일상솜씨 드로잉생활’ 外

 

[백뉴스=김이슬 기자]

김이슬 기자 김이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많이 본 뉴스